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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서 종소리나는 만어사, 사명대사의 승병 표충사.

만어사 경석

만어사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창건한 사찰로, 만어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물고기 모양의 바위에서 종소리가 나는 신비로운 경석이 유명합니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던 사찰로, 보우, 해린, 일연 등 4대 국사가 주석했던 곳입니다. 호국불교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두 사찰은 밀양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자 관광명소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소개와, 승병,문화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만어사, 표충사 소개

만어사: 밀양 만어사는 수로왕 5년(46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가락국의 옥지에 살던 독룡과 만어산의 나찰녀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오곡 수확이 어려웠습니다. 수로왕은 부처님께 기도하여 6 지구와 1만 천인들이 내려와 두 신령을 설법으로 제압하고 재앙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해 무척산의 신승을 찾아가 새 거처를 요청했고, 그 자리에 많은 고기떼가 모여들어 돌로 변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만어사에는 용왕의 아들이 변한 미륵바위와 고기들이 변한 만어석이 있어 아기를 낳지 못한 이들의 기원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표충사: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 원효대사가 터를 잡아 세운 죽림사이다. 흥덕왕 4년(829) 셋째 왕자가 몹쓸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의 약수를 먹고 병이 낫게 되자 탑을 세우고 약수 이름을 영정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영정사라 부르고 절을 크게 부흥시켰다. 신라 때는 보우국사가, 고려시대 때는 해린국사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특히 일연이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하였다고 한다. 조선 헌종 5년(1839)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명대사의 사당을 이곳에 옮기면서 표충사라 하였는데, 이 사당을 절에서 관리하면서 사(祠) 자가 사(寺)로 바뀌었다.
표충사에는 중앙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고 동쪽에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당의 영정을 함께 모시고 있다. 사찰 주위의 뛰어난 경관뿐 아니라 불교와 유교가 통합되어 있는 한국사찰의 유연성을 보여 주는 곳이다.

사명대사의 승병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은 조선 중기의 저명한 불교 승려로,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지휘관으로 크게 활약했습니다.
사명대사는 본래 임응규라는 이름으로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씨가 곱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스무 살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명종 때 승과에 합격하여 직지사 주지 등을 역임하며 불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조정의 근왕문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승병을 모아 평양 근처의 순안으로 가서 휴정과 합류했습니다. 그는 의승도대장으로 임명되어 2천 명의 승병을 이끌고 조선군과 함께 일본군에게 빼앗긴 평양성 탈환에 나섰습니다. 조선군과 승병, 의병, 그리고 명나라 군대가 힘을 합쳐 평양성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사명대사의 승병들은 용맹스럽게 싸워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사명대사는 계속해서 승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웠으며, 전쟁 말기에는 명나라 군대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신으로 임명되어 여러 차례 적진에 들어가 회담을 했고, 그 성과로 포로로 잡혀간 3003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하는 등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사명대사의 활약상은 당시 문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글 "매화수하"가 최근 고가에 낙찰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문학적 재능과 더불어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시기 승병의 활약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보유 문화유산

밀양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은 표충사에 있는 향로다. 밀양 표충사에 있는 청동은입사향완은 고려 명종 7년(1177년)에 제작된 국보 제75호 향로입니다. 1957년에 처음 발견된 이 향로는 주발 모양의 몸체와 둥근 받침이 연결된 형태로, 가는 은실을 청동에 새겨 넣는 정교한 은입사 기술로 제작되었습니다. 57자의 명문에는 제작 연대, 발원, 발원자, 중량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원래 창녕 용흥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선조가 사명대사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표충사 내 호국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이 향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귀중한 문화재로, 고려시대 향로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보물 제467호 문화재입니다. 표충사 대홍원전 앞에 세워진 이 3층 석탑은 기단, 탑신부, 지붕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1층 탑신부가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크고, 상층부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독특한 형태를 보입니다. 또한 탑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잘 보존되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은 1995년 실시된 삼층석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기단 적심부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석탑의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기비>(1491년)를 포함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944호로 지정되었다.